넷플릭스 추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2020. 5. 25. 18:23세상사 강독

관광지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나간지 4일 째. 7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바코드를 찍는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질문을 받는다. 나무 젓가락 어디 있어요? 가스 어디 있나요? 앞에 주차 해도 되나요? 등등 그 중 최다량의 질문은 화장실 어디 있어요가 되시겠다. 그래서 “화장실은 건너서 ***뒤에 있습니다.” 문구를 출력해서 문 앞과 카운터 앞에 붙쳐놓았다. 그럴것까지 있나 하겠지만 7시간 동안 화장실 어디 있냐는 질문만 50번 넘게 듣게 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바코드 찍고 2+1 행사 안내하다 보면 퇴근길에 입이 사막처럼 마를 지경이 된다. 무튼 종이를 두 군데에 잘 보이게 붙쳐 놓았지만 결과는 도루아묵이었다. 질문만 변경되어 “화장실 **뒤에 있는 거 맞아요?”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삐끗한 내 허리의 결과물=정돈된 창고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게 된 이유가 알바의 피로도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과 더불어 고시원이라는 배경이 흥미로웠다. 요즘 유투브로 고시원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재미졌다. 생활이 고달파 그런가 스몰럭셔리 같은 브이로그보다 찌들고 쪼그라드는 일상을 구경하는 것이 흥미롭다. 부모님 집에서 쫒겨나게 되면 나도 이용해야 할 곳이라 그런가 선행 학습을 하는 느낌도 든다. 무튼 넷플릭스에 타인이 지옥이다가 뜨고 내리 에피소드4까지 봤다. 아침 9시에 일어나 2시까지 내리 보니 확실히 흡입력은 있다. 특히 30/40분 미드와 달리 60분을 꽉 채웠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든다.

발견한 키워드 : 무례함, 불쾌함, 무안함, 민망함

연기가 기 막혀브러

지방에서 상경한 주인공이 제일 저렴한 19만 원 고시원을 들어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깨름칙하다. 무례하고 불쾌하다. 얼룩덜룩 벽에 피어난 곰팡이처럼 침구에 켜켜히 쌓인 먼지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벽 한 장으로 나뉘어진 공간은 원치 않은 가까움으로 마음이 점점 뒤틀려진다.
제일 인상 깊게 본 에피소드는 4화다. 여운이 제법 길어 이 포스팅을 작성 후에 다시 볼 예정이다. 정신지체의 남자와 고시원 주인인 여자 그리고 거리에서 만나 고시원 주인을 따라온 도를 아십니까 아줌마까지. 식탁을 둘러 셋이 앉아 관상을 본다. 정신지체의 남자가 도를 아십니까 아줌마 옆에 찰싹 붙어 앉고 고시원 주인 여자는 박수를 치며 너무 잘본다 우쭈쭈를 연달아 날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편하면서도 불쾌한 분위기가 주인 여자의 한 마디로 파지직 깨져버린다. 도를 아십니까 아줌마는 과거 주인에게 많이 먹는다고 구박했었던 지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에 알아보겠던데.”같은 말이 얼마나 두려운 느낌을 주는 지 모른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두려움을 건든다. 특히 상대방 공간에 있게 된다면 공포는 곱절이 된다.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면 관계의 공포에 집중하게 된다.

에덴 고시원과 사회의 데칼코마니

이름이 살짝 올드하다. 범죄 공모자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지옥 같은 곳의 이름은 에덴. 어쩌면 선악과를 따먹은 곳도 그곳이니 등 정도는 맞대는 의미 부여가 되겠다. 에덴 고시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지만 매우 같은 느낌을 준다. 차이라면 고시원 속 사람들은 노골적인 불쾌함을 선사하지만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례하고 민망하게 사람을 긋는다. 특히 동아리에서 함께 한 형이자 회사 대표는 동생이자 인턴인 주인공에게 곧 잘 선을 넘는다. 예를 들면 주인공 여자친구를 들고 성희롱과 비슷한 말을 한다던지, 원치 않은 사생활을 회사 사람들과의 점심에서 반복 언급한다던지 언짢게 만드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무례함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주인공에게 억지 미소를 강요하며 위화감을 보이기도 한다. 에덴 고시원 사람들처럼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우위를 조장하며 보지 않는 권위를 휘두른다. 보다 보면 뒷통수 시원하게 갈기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며칠 전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저씨가 비관하며 자살했다. 주민 중 한 명이 폭력과 더불어 협박 문자까지 보낸 정황이 발견되었다. 경비 아저씨가 남기 달력에는 주기적으로 본인을 찾아오는 주민의 일정이 체크되어 있었다. 아파트 씨씨티비에는 주민이 경비소로 찾아오니 도망가듯 뛰쳐 나가는 경비 아저씨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평소 가족에게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경비 아저씨에게 그 주민은 얼마나 큰 지옥이었을까? 나는 지레짐작도 할 수 없는 그릇일 것이다.
천국을 지옥으로 만드는 요소는 사과 한 알보다 작다. 아무리 큰 사건도 작은 씨앗에서부터 발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 고시원은 어디에나 있다. 피가 튀고 칼을 든다고 해서 지옥이 아니다. 사과 한 입 베어물고 아담과 이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본인의 몸을 숨겼다. 어쩌면 지옥은 둘에서부터 시작 하는 것 아닐까.

조명 연출도 굿이여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
맞다, 있어야 한다

김용대 시인의 시 중 한 구절이다. 있어야 한다는 내 대답이다. 서울에 가면 답답할 때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지하철, 카페, 구내식당, 화장실 등등. 팔꿈치가 닿고 옆 사람의 노트북 전원선이 내 자리에 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나의 섬이 타인에 의해서 갉아먹혀질 때 내부에 일어나는 지진은 어떤 것들을 파괴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남은 6편 마저 보고 보태거나 덜어내도록 해야겠다.

 

- 주인공의 방 벽에 구멍이 뚫려있다. 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 보는 압박감을 느끼는데. 판옵티콘의 감옥이 떠오른다.

- 애플과 구글이 코로나19 대응으로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개발 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고 한다. 여러 부분이 우려가 된다.